맛집 이야기

조선일보 부부맛집소개 ; 속초·양양·고성

장호열 2020. 11. 1. 13:26

강원도 바닷가 가까이, 귀촌한 부부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둘 늘고 있다. 처음엔 현지 주민들이 조용히 찾는 식당이었다가 차츰 여행객들에게도 알려지는 중. 속초·양양·고성에서 젊은 부부들이 이색 메뉴를 선보이는 작은 식당을 찾았다.

 

속초 영랑호 부근 완앤송 하우스레스토랑(이하 완앤송)은 박재완·송지은씨 부부가 집 2층에 만든 공간이다. 집을 짓고 살면서 손님들을 초대해 해 먹던 음식들이 소문나면서 자연스럽게 2층에 식당을 열게 됐고, 어느덧 메뉴로 자리 잡았다. 문 연 지 벌써 4년째, 속초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됐다.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는데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속초에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집이 없어서 강릉까지 가야 했죠. 귀찮아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게 ‘완앤송’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박재완 셰프의 말이다. 이 집의 베트남식 소고기쌀국수(보통 9000원, 라지 1만1000원)는 속초 현지 주민들의 입맛부터 파고들었다. 반응이 좋아 평일에는 90%가 현지인이다.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여행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90%가 여행객이다.

거부감 없는 향과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국물은 베트남보다는 한국화된 쌀국수에 가깝다. 고기와 사골로 육수를 내는 게 맛의 비결이다. 육수는 소고기쌀국수뿐 아니라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사태국밥(9000원, 고기 추가 1만1000원)에도 쓰인다. 여기에 베트남 누들 샐러드(1만1000원), 타코라이스(1만1000원)가 점심 메뉴 4종이다.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저녁은 코스 요리(2만9000원부터)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취사병은 아니었지만 군 시절 독립 부대에 있으면서 음식을 해 먹어야 했던 박 셰프와, 취미로 요리를 꾸준히 배우고 즐겨왔던 아내 송지은씨의 협업이 속초 맛집으로 이끌었다. 스테이크나 샐러드 종류에 들어가는 허브는 마당에서 직접 길러 쓰는 등 요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는 부부의 공간은 연일 만석이다. 영랑호가 보이는 창가 자리를 노리는 이가 많다. 운이 좋아 손님이 적은 날엔 “네팔 여행 중 우연히 만났다”는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쉬는 시간 오후 2시 30분~6시)까지, 매주 수요일 휴무.

 

‘서핑의 성지’ 양양에는 서퍼(surfer)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 많다. 파도타기에 빠져 양양에 정착한 서퍼 겸 셰프의 요리는 여행의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양양에서도 ‘서퍼 천국’으로 통하는 현남면 인구~죽도~동산에 이르는 4㎞ 해변엔 서프숍과 게스트하우스, 식당, 카페 등이 모여 있다. 하이타이드는 이곳에서 태국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이다.

태국 분위기 물씬 나는 식당 벽면에서 서핑 보드와 서핑 사진이 눈에 띈다. 하이타이드를 운영하는 강기운(43)씨 부부는 서핑을 즐기러 양양 해변을 찾다 아예 이곳에 정착해 2017년 식당을 열었다. “양양의 파도가 좋아 이곳에서 서핑을 하며 어떻게 먹고살까 고민하다가 ‘꿍팟퐁커리’(태국식 새우 카레)란 요리를 먹고 태국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다가 생각나는 맛이더라고요.” 요리 학원을 다니고 태국 음식점에서 일을 배우다 태국 현지로 날아가 요리 공부도 했다. 스노보드 프로 선수와 코치로 활동하던 서퍼는 그렇게 셰프가 됐다.

 

 

하이타이드의 대표 메뉴는 ‘꿍팟퐁커리(2만원)’ ‘똠양꿍(1만2000원)’이다. 태국 향신료와 재료를 사용해 현지의 맛을 살리면서도 한국인 입맛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이국의 맛이다. 양양에서 잠시나마 태국을 여행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속초, 강릉, 철원 등 인근 도시에서 찾아올 만큼 소문 자자하다.

셰프지만 서퍼인 강씨는 여전히 파도가 들어올 땐 파도를 탄다. 서핑을 떠난 셰프 때문에 식당 문을 닫는 경우도 있으니 방문 시 전화로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최근에는 육아를 위해 평일에는 점심만 영업한다. 화~금요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토·일 오전 11시~오후 3시·오후 5~9시.

 

속초 위 조금 한적한 고성도 요즘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었다. 고성군 하리 고성군문화원 부근의 401쁘아송다브릴은 프랑스 유학파 출신 사진 작가 이상민(36)씨와 요리사 아내 김슬아(36)씨가 문을 연 작은 사진 스튜디오 겸 식당이다. ’401 쁘아송다브릴'이라는 이름은 아내 김씨의 생일인 ‘만우절(Poisson d’avril·4월의 물고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유학 시절 유학생들과 집을 공유해 쓰면서 ‘파리 하숙집 요리사’란 별칭을 얻었던 김씨가 그날그날 ‘장바구니 상황에 따라’ 하고 싶은 요리를 메뉴로 낸다. 유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파스타와 리소토를 주로 하지만 문어가 좋은 날엔 ‘묵은지문어삼합’을, 김밥을 말고 싶은 날엔 독특한 재료로 김밥을 말아 내기도 한다. 그야말로 하숙집 스타일. ‘무수분 보쌈’부터 스위스 가정식 감자 요리인 뢰스티 스타일을 응용해 만든 ‘프랑스식 감자전’ 등 국경과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메뉴가 테이블에 오른다.

1인 1만5000원에 제공하는 식사는 철저하게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규모가 아담하기도 하지만 식사가 전채부터 더치커피까지 코스로 제공되기 때문에 ‘최대한 방해받지 않는 오붓한 식사’를 내세우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는 식당으로 처음 제공하는 밥과 반찬량이 적을 수 있다. 요청하면 추가 제공한다. 비건 식당은 아니지만, 월요일은 ‘고기 없는 날’로 정해 고기 반찬이 없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기념사진 촬영(1만5000원)과 식사를 묶어서 하는 분위기다. 김슬아씨는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이 식사 후 맛있다고 하면 기분이 좋더라. 한평생 매일같이 요리를 해 온 진정한 셰프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며 웃었다. 식사 예약이 있는 시간만 식당으로 운영하며 수요일은 정기 휴무. 이달 31일은 야외 촬영 예약이 있어 식당은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