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륙횡단 - 열여덟 번째 날(2) ; 2015. 11. 6(금). 그랜드 캐니언 제대로 감상하기
B(Yavapai Point)에서 한참을 걸어가는데 앞에서 한국말을 하는 두 청춘 남녀가 걸어간다. 반가운 나머지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물었더니 젊은 아가씨는 “미국서 오래 살았다”고 하고 “남자 친구는 부산에서 왔다”며 우리보고는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미국대륙횡단 Road Trip을 하고 있는데 워싱톤 DC에서 시작하여 나이아가라 폭포,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까 우리보고 “대단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Road Trip을 한다니까 나이가 궁금한가 보다.
젊은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보고 “예의 없게 나이가 뭐냐”고 핀잔을 준다. 아가씨가 하는 말이 “요즘은 어르신들에게 연세라고 하면 싫어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우리는 괜찮다고 했다.
미국 와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교포든 한국 관광객이든 무척 반갑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본다.
- 관광객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
F(Mohave Point)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는 셔틀 버스를 타고 왔다. 국립공원 내 셔틀버스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셔틀버스는 Red, Green, Blue 세 가지가 있는데 노선이 각각 다르므로 탈 때는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 후 이용해야 한다.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 나처럼 감각이 무디고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장엄한 관경을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렵게 구한 천관우 박사의 기행문중 일부를 소개하면서 내가 본 그랜드 캐니언의 소감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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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에게
K형, 황막(荒漠)의 미개경(未開境) 애리조나에 와서 이처럼 조화의 무궁을 소름끼치도록 느껴보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의 그 웅혼 괴괴한 절승(絶勝)을 그 한 모퉁이나마 전해 드리려고 붓을 들고 보니, 필력이 둔하고 약한 것이 먼저 부끄러워집니다.
- 중략 -
눈앞에 전개되는 아아 황홀한 광경! 어떤 수식이 아니라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 광경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옳을는지. 발밑에는 천인(千仞)의 절벽, 확 터진 안계에는 황색, 갈색, 회색, 청색, 주색으로 아롱진 기기괴괴한 봉우리들이 흘립(屹立)하고 있고, 고개를 들면 유유창천(悠悠蒼天)이 묵직하게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550m의 협곡 남안(南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K형, 나는 이것을 보려 여기에 온 것입니다. 별안간 일진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며 옷자락을 휘몰더니 휘날리는 눈, 눈. 멀리 이 협곡의 대안(對岸)인 ‘포웰’ 고원을 운무의 품안에 삼키고, 기발한 봉우리를 삽시간에 차례차례로 걷우고, 마침내 눈앞에 보이던 마지막 봉우리를 삼키고, 망망한 운해, 휘날리는 눈보라, 그리고 숨 가쁜 강풍. 회명(晦冥)하는 천지 속에 나는 옷 젖는 것도 잊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염천지지유유(念天地之悠悠) 독창연이체하(獨愴然而涕下)’라고 한 옛사람의 글귀가 선뜩 머리를 스치면서 까닭 모를 고요한 흥분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노라니 홀로 처연하여 눈물이 흐른다)
- 계곡을 따라 도도하게 흐르는 콜로라도 강 -
저 멀리 콜로라도 강이 보인다. 비록 밤은 아니지만 그 옛날 고등학교 다닐 때 즐겨 불렀던 노래 ‘콜로라도의 달’이 생각난다. 사춘기 시절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던 노래 – 아련하고 낭만이 깃든 그리고 강물 위에 은은하게 비치는 금물결 은물결 같은 달빛과는 달리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 사이로 도도하게 흘러가는 황톳빛 색깔의 강물이 주변의 깊은 계속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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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달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물결 위에 비치네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마음 그리워져하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물결 위에 비치네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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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 운이 좋은가 보다. 어제의 눈보라 때문에 아직 잔설이 곳곳에 남아있고 산책로의 길바닥은 얼어붙은 곳이 많다. 그러나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고 바람 없는 쾌청한 늦가을 날씨다.
F(Mohave Point)에서 5.9km 떨어진 곳에 그랜드 캐니언의 마지막 View Point인 Pima Point가 있는데 셔틀버스를 타고 갈까하다가 이곳 한곳만 남겨두고 다음에 또 한 번 방문할 기회의 여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Mohave Point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주차장 까지 되돌아왔다. 벌써 4시 30분이 넘었다. 늦가을이라 해가 짧은데 오늘도 야간운전하면서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벌써 주변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는 캄캄한 밤이 다 되었다. 저녁식사는 어제께 갔던 ‘Red Raven’으로 가서 Pork Steak를 맛있게 먹었다.